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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책다락방: 일곱 번째 이야기

  • 신은별
  • Oct 11, 2016
  • 5 min read

<채식주의자>

2016년 5월.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 그 떠들썩한 화제의 중심에 소설가 한강과 <채식주의자>가 있었습니다. 으레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동네 서점에서 한 권 사다 책상 위에 놓아두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출간 9년 만에 뒤늦게 문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로는 화제성도 한몫했겠지만, 단순히 ‘한강’, ‘한국 최초’, ‘여성 문학’, ‘세계 3대 문학상 수상’ 따위의 문구로 설명할 수 없을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중학생 시절, 처음 <노랑무늬영원>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강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번역 문학이나 특징 없이 읽기에 무난한 현대 문학만을 읽었던 당시 제게는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었죠. 그도 그럴게, 실험적 시도를 많이 하는 현대 소설가 중에서도 유난히 개성이 강하고 혼란스러운 그 ‘한강’의 글을 덜컥 집어왔으니 말 다했던 것이죠. 결국, 어린 마음에 오기로 읽다가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나네요.

소설 <채식주의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반전을 기하는, 기이하고 독특한 소재의 사용이 눈에 띕니다. 비교 대상이 얼마 없어 잘은 모르지만, 제가 읽었던 <노랑무늬영원>보다는 조금 더 뚜렷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 문학작품의 추상적인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흥미롭게 여길만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단골소재인 ‘인간의 욕망’이라는 주제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권력을 행하는 자들’과 이로부터 오는 ‘폭력의 피해자들’로 나뉘는 인물 관계, 개인 혹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집단적 폭력, 남성들의 욕망,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서의 수동적 여성상, 식욕 등 다소 뒤죽박죽 하지만 알고 보면 공통분모가 많은 제재를 잘 엮어내고 있지요.

우선 그중에서도 ‘식욕’은 대체 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 제목처럼 영혜는 왜 ‘채식주의자’가 된 것인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합시다.

  1. 영양불균형에 걸린 우리 사회, 육식에 담긴 ‘욕망’

누군가는 <채식주의자>라는 제목만을 보고 덜컥 책을 구입했다가 내용을 보고 기겁해서 읽기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그로테스크하고 자극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지요. 저도 대체 왜 이런 소재를 선택했을까 싶었지만, 사실 책을 읽기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보다 간단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식욕’이라는 것은 인간의 3대 욕망(수면욕, 식욕, 성욕)에 속한다고들 하지요. 무언가 심리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음식을 찾게 됩니다. 그 목적이 영양분의 섭취이든, 스트레스의 해소이든 간에 말이죠. 자연스럽게 현대사회에는 식욕과 관련된 문제가 많습니다. 이분화된 외모에 대한 기준과 평가,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린 여자들, 반대로 과도한 탐욕으로 인해 소아비만, 당뇨 등의 증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과식, 소화불량 등 모두 현대 사회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편, ‘육식’은 그중에서도 가장 동물적인 본능입니다. 육식은 주로 짐승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진화론에 따르면 덜 진화한, 즉 가장 인간에서 먼 존재일수록 ‘인간’이 아닌 ‘동물’에 가깝다는 것. 즉, 작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비이성적이고 지저분한 욕망을 통틀어 설명하기 위해 ‘육식’을 일종의 상징성을 가진 행동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물질욕, 수면욕, 성욕 등 모든 것을 한 소설 안에 집어넣어 설명하기에는 너무 범위가 넓으니까요. 따라서 작품 속에서 영혜가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가진 욕망에 대한 혐오, 거부감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비정상의 범주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성소수자(LGBT)들과 그 외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사회적 소수’라는 단어는 다수의 인정 하에 생겨나는 말이 아닌가 하고요. 성소수자 문제에 관해서 저는 저의 확고한 신념에 따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 밝힐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 입을 다물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에 대한 고민이 개인의 ‘개성’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 더 나아가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이를 가장 보여주는 것이 영혜와 남편이 회사의 고위간부들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입니다. 답답하다는 이유로 속옷을 입지 않고 식사자리에 등장한 영혜, 평소 아내의 기행에 설마설마하다 곧 자신의 가정이 사실임을 알아채고 절망하는 남편, 영혜가 마치 소위 창부라도 되는 듯이 비웃음과 질타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장 사모님들. 다시 보아도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많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대체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의 문제가 뭔데? 고작 하나의 ‘개인’일 뿐이잖아요. 대답은 이미 소설에 나와 있습니다. 일상에서부터 자신을 유리시키면서까지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 사회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스스로를 고문하여 결국 비극에 이르는 영혜의 삶. 그 자체가 억압하는 사회의 결과물이 아닐까요? 마지막까지 괴로워하다 영양실조로 눈을 감는 최후가 영혜 스스로에게는 ‘해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이유가 바로 사회에 있었기 때문이죠.

  1. 포르노그래피와 예술, 그 미묘한 경계에 대하여

저는 예술을 자주 접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작품을 보다 보면 자연히 성적묘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 습관적으로 성적 묘사를 남발하는 예술에 대해 저는 포르노그래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어쨌든 도를 넘는 성적 묘사는 목적이 뚜렷하다 하더라도 이를 관객 하나하나에 일일이 설명하고 납득시키기란 불가능한 법이지요. 대중이 보기에는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이니까요.

그러니 더더욱, 이런 입장을 가진 저이기 때문에 적나라한 성적 묘사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영혜와 인혜 남편 사이의 일은 현실적으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고, 결코 이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모든 성적 접촉을 뒤로하고 독자의 기억에 남는 것은 두 남녀의 육체가 결합하는 장면이 아니라, 마치 춤을 추듯 서로 얽히고 설킨 형형색색의 꽃과 줄기의 이미지이지요. 작가는 이 역겨운 성적묘사를 영리하게 이용한 겁니다. 시각을 마비시키고, 작품이 우리의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강렬한 향기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1. 두 여자, 인혜와 영혜

연작소설의 묘미라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사건에서도 여러 '시선'을 제공한다는 것. <채식주의자>는 총 3부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이 서술하는 현실 세계와 영혜의 꿈 이야기를 넘나들고, 두 번째 소설 <몽고반점>은 그로부터 2년 후,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남편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영혜의 이야기이다. 마지막 소설인 <나무 불꽃>은 언니 인혜의 시점에서 마무리된다.

그저 은연중에 드러날 뿐이지만, 처음 책을 펼치자마자 이 작가가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로 <채식주의자>는 여성 중심적인 작품입니다. 그러고 보면 중심인물이 두 여자라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네요.

특히 작중 ‘인혜’의 역할은 놀라운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분명 누구보다도 제목의 주인공인 영혜나, 누군가는 금지된 미지를 탐험하는 듯한 환상적인 묘사의 '몽고반점'을 기억하겠지요. 그러나 뜻밖에 제 뇌리에 깊숙이 박힌 것은 외모 외에는 보잘것없어 보였던 <나무 불꽃>의 인혜였습니다. 조용하고 예쁘장하고 애교 있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한마디로 말해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내조하는 아내'의 표본인 그녀는 소설 속에서 가장 평범한 존재입니다. 남편의 외도와 동생의 정신착란 증세에도 굴하지 않는 단단한 그녀를 유일하게 괴롭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이해와 용량을 뛰어넘는 (p. 167)" 그들의 세계에 대한 우울함을 목구멍 뒤로 삼켜내고, 쌓여가는 피로를 웃음 뒤에 꽁꽁 감추는 그녀를 보다 보면 우리 사회의 피해자가 사회적 소수뿐만 아니라 다수에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불안한 그들을 지탱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지친 자신을 위로해 줄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그녀는 일평생 자신의 삶을 다른 이에게 내놓고 그 대가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그들의 열정을 사고자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분명 행적이 특이하고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반면에 애처로울 정도로 성실한 인혜의 모습은 개인의 개성을 죽이고 때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어서 더욱 안타깝고 더욱 마음이 갑니다.

한편, 영혜는 인혜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완전히 상반되는 선택을 합니다. 가슴 안에 자리한 욕구를 내리누른 모습을 깨닫고도 변화를 주지 않는 언니와는 달리, 어느 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육식주의자들' 즉 사회의 잣대에 맞추어 사는 이들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것을 맹렬히 거부하는 외부인(Outlier)에게 세상은 잔혹하게도 밀어내기만 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감히 세상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고 나서도 영혜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필사적으로 고기를 먹이기 위해, 비정상적인 존재를 참지 못해 달려드는 그들의 눈동자가, 그들의 번뜩거리는 욕망이 곧 우리의 얼굴처럼 비추었습니다.

이렇게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소설을 요약해보았습니다. 다소 어려운 철학이 담긴 이야기라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 글을 통해 미리 이야기를 들춰보며 부담을 덜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채식주의자> 읽기, 모두 도전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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