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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책다락방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 필사본

  • 신은별
  • Apr 27, 2016
  • 4 min read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늘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자란 학생이라면, 혹은 학생인 적이 있었다면 누구나 알고 있을 그 이름, 윤동주의 시입니다. 물론 한국 교과과정을 공부하지 않은 친구들의 경우 윤동주 시인이 생소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간단히 설명을 해보자면 윤동주 시인은 백석, 정지용, 김소월 등 시대를 아울렀던 수많은 선배 시인들을 제치고 당당히 ‘국민 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시는 한국 문학의 뿌리와 같은 존재이지요.

저에게도 윤동주 시인은 참 뜻 깊은 인물입니다. 제 학창 시절을 수놓았던 아름다운 시를 써주신 분이고, 나의 나라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다독이신 분이고,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시에 대한 토론을 가족과 친구들과 정답게 나눌 수 있게 해준 분입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그의 시 대부분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대중성과 예술성,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고루 갖춘 작품을 많이 배출해 낸 시인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나고 자란 인물들의 운명이 그러했듯 그는 시인이자 조용하고 확고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917년 중국 만저우 지린성 (당시 북간도)에서 태어나 명동학교, 연희전문학교 (현재 연세대)를 거치며 육촌 형이었던 송몽규와 함께 글을 쓰고 독립의 꿈을 꾸다가, 강제적으로 창씨개명을 한 후 더욱 심해진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42년 일본으로 망명합니다. 망명 생활 중에도 송몽규와 함께 문학적 탐구를 하던 그는 독립운동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계속된 감시 속에 살다가 결국 1943년 송몽규와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2년형을 선고받고 1945년 2월, 광복을 겨우 6개월 남겨놓고 옥중 사망합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28년이라는 짧은 세월동안 약 90편에 달하는 시를 우리에게 남겨놓았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초판본>의 차례. 약 9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서시'는 가장 우리의 눈과 귀에 익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텐데요. 이 시는 원래 무제의 작품이었지만 윤동주 시인이 돌아가신 후 출판 과정에서 ‘서시(序詩)’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설을 붙이자면 끝이 없겠지만 윤동주 시인의 조국을 향한 마음, 진지하고 섬세한 성품, 종교적 성향, 시대적 상황, 그리고 로맨티스트 정신까지 한 번에 엿볼 수 있는 구슬픈 시입니다. 제가 굳이 이 시를 앞에 써 붙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가 제가 소개하려는 시집의 첫 장을 장식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의 시집이자 영원한 마지막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 초판본이 올해 다시 재발간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저는 당장에 서점을 찾아갔습니다. 오랫동안 그의 시를 공부하고 읽었지만 언제나 교과서 혹은 최근 출간된 것으로만 보아왔던 제게 ‘초판본’이라는 말은 낯설고도 정겹습니다. ‘초판본'을 재현한다 함은 다시 말해 디자인부터 글씨, 언어, 제본 방식 모두 1955년 당시 사용되었던 것을 채택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다시는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던 60년 전의 그 시집을 만났다는 기쁨과 익숙하지 않은 옛날 활자들을 마주한 긴장감이 동시에 부풀어 오르는 그 순간!

(다시 말하지만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이건 그저… 팬(Fan), 그래요. 열렬한 팬의 마음이라고 해줘요.)

책날개에는 윤동주 선생님의 일생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습니다. 읽는 방식이 오른쪽 → 왼쪽이고 글자 배열도 세로 배열이기 때문에 오른쪽 날개에.

대망의 첫 장은 1941년 11월 윤동주의 손글씨로 쓰인 ‘서시'의 복사본으로 시작됩니다.

그 다음은 아마 ‘서시’ 다음으로 잘 알려졌을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읽다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쓰였던 옛 한글 표기법이 눈에 띠네요. 현재는 ‘있읍니다 → 있습니다’와 같은 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또 다른 그의 유명한 시 ‘십자가.’

뒤로 갈 수록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 표기어가... 다행히 아주 어려운 것은 없어보이지만 몇몇은 옥편을 찾아봐야 할 것 같네요.​​

위의 두 시와 비슷한 성향의 시 ‘참회록’.

‘길'은 2009년 ‘그것이 알고 싶다: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편에서 그를 사랑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자주 낭송되는 시로 등장했었는데요. 짧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의 태도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별 헤는 밤'입니다. 낯선 일본 땅 옥중에서 쓰인 시인 만큼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조국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 속에서 피어나는 굳건한 다짐이 강렬하게 와닿습니다. 그 마음이 더 아픈 이유는 그가 죽음을 예고했기 때문일까요?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반면 ‘쉽게 쓰여진 시'는 그가 릿쿄대학에 입학한 지 6개월이 된 무렵 쓰였습니다. 1940년대가 아니더라도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앞장서 독립운동을 하며 죽어갔던 그의 동료들과 일본에서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대조시키며 괴로워했을 윤동주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 한 줄 시를 적어볼까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 대학 노트를 끼고 /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 나는 무얼 바라 /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영화 <동주(2016)> 중에서. 배우 김하늘 (윤동주 역)

마지막으로 앞서 소개한 시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진 시는 아니지만, 제가 크게 감명받았던 시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우의 인상화'라는 제목의 이 시는 최근 개봉한 영화 <동주>에서 그가 두 동생과 이불 속에서 대화를 나누던 장면으로 등장하며 제 인상에 깊이 남았던 시입니다. 영화 <동주>의 이준익 감독은 이 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 대화를 나눈 이가 윤동주 선생의 동생 윤일주 선생인데 동생을 보는 형의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어린 동생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 있죠. 윤동주 선생은 결코 자신만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거에요. [...] 끊임없이 자기 반성을 하면서도 타인도 봤죠. 그래서 ‘아우의 인상화’는 특별한 시에요. 그가 얼마나 넓은 사람인 줄 알 수 있죠.”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발걸음을 멈추어 /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 ‘사람이 되지’ /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그 외에도 우리가 몰랐던 윤동주의 동시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초판본과 함께 시를 따라 써 볼수있는 ‘필사본’도 함께 구매를 했는데요. 아마 요즘 힐링 아트북, 컬러링북, 고전 필사책이 유행하면서 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필사야 책과 노트만 있으면 할 수 있다지만 저와 같은 매니아층에게는 아주 좋은 컬렉션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시인 백석의 ‘사슴’, 그리고 김소월의 ‘진달래꽃’도 초판본과 필사본을 출간했으니 관심있으시다면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모두 사버렸네요…)

매일 밤마다 한 편씩 따라쓰다보니 마음이 정리가 되고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나는 것 같네요. 바쁜 현대인의 생활 속 마음의 위안이 필요하신 분들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초판본> 꼭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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