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책다락방: 다섯 번째 편지
- 신은별
- Mar 18, 2016
- 4 min read

사진: 직접 촬영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 문학동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우선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이라 하여 눈을 빛냈을 작가 지망생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좋은 글쓰기에 대한 대작가의 충고와 조언을 원했다면, 잠시 그 기대를 내려놓기를 바란다고. 사실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과 동경이라 하면 저 역시 여느 작가 지망생들 못지않게 대단한 편입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 스스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보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애초에 제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온전히 ‘헤밍웨이 같은 작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하는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었고요. 일단 소재부터가 일단 신선해서 눈길을 끌 수밖에 없죠. 일평생 헤밍웨이를 동경했던 작가 지망생이 현실에서 그를 만나 일 년간 함께 생활하게 된다니. 그리고 그것이 실화라니!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1899년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캔사스시티 스타지 (미국 캔사스 주에서 1880년대에 설립된 신문사)의 수습기자로 취직합니다. 1926년 <태양은 다시 뜬다 (원제: )>로 피츠제럴드, 포크너, 스타인 등 당시의 내로라하는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그 후 차례로 <무기여 잘 있거라 (1929)>, <킬리만자로의 눈 (1936)>,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40)> 등을 발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52년에는 <라이프> 지에 단편 소설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며 그 이듬해 퓰리처상 수상,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납니다. 심지어 헤밍웨이가 죽은 후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혈혈단신으로 문학과 이 세상 모든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은 사람”이라 명명했죠. 그러나 천재는 꼭 기구한 삶을 산다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이 되는지–이렇게 세계 문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려한 업적을 세운 그는 종내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가 자살할 때 사용했던 같은 권총으로!) 그리고 그런 헤밍웨이에게 있었던 단 한 명의 문하생. 그가 바로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의 글쓴이 아널드 새뮤얼슨입니다.
1930년대 초, 당시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새뮤얼슨은 어느 날 잡지 <코스모폴리탄>에 실린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을 읽게 되고, 감명받은 그는 다짜고짜 헤밍웨이가 살고 있던 키웨스트를 찾아갑니다. 이미 <무기여 잘 있거라>로 큰 성공을 거둔 헤밍웨이는 유명세에 몰려드는 사람들에 질려있었지만, 이내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새뮤얼슨을 확인하고 그와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새뮤얼슨이 훗날 헤밍웨이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쓴 일종의 회고록입니다. 때문에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이라는 제목에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의 글쓰기의 비법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설에 가까운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혹자는 이 책의 제목보다 부제인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이 더 제목에 가깝다고 실망 어린 한탄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옮긴이가 중고서점에서 조용히 잠자던 이 책을 집어 든 이유, 원제인 ‘With Hemingway(헤밍웨이와 함께)’가 아니라 굳이 ‘작가 수업’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단순히 상업적인 홍보 목적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만 색다른 형식과 더 깊은 내용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요. ‘작가는 이래야 한다’, ‘좋은 글은 저래야 한다’ 하는 비법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글쓴이는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헤밍웨이의 고기잡이배에서 있었던 일화는 작가의 사상부터 사소한 생각과 삶의 자세를 모두 투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훨씬 효과적이고 독자의 공감을 돕습니다. 단순한 문자의 나열보다 존경받는 작가가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훨씬 와 닿을 수밖에요. 생생한 현장감은 헤밍웨이의 작품, 특히 <노인과 바다>의 배경을 연상시킵니다. 따라서 이때의 그가 바다에서 관찰한 것들이 어떻게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는지 짐작해보는 재미가 있지요. 그의 작품을 감명 깊게 읽은 분들이라면 지루하지 않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책, 읽다 보면 마치 명언집과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주옥같은 말들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매일 헤밍웨이와 함께 얼굴을 맞대며 토론을 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말들이죠. 이것이 의도적인 각색인지, 실제로 헤밍웨이가 매사에 진지한 성격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일상적인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새뮤얼슨과 헤밍웨이 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답변 하나하나가 상당히 교훈적입니다. 게다가 그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헤밍웨이와 함께 바다를 항해하며 글쓴이가 배운 것은 단순히 글쓰기에 대한 비법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미지의 세상을 여행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묻게 된다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본질적인 질문까지 파고들게 된 것이죠. 또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의 현대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아래는 책 속에서 가져온 헤밍웨이의 말을 일부 요약한 것입니다. 전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저기에서 ‘글쓰기’를 빼고 ‘삶’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보세요. 신기하게도 너무나 잘 들어맞는 해석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글을 위해 독자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방식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알 수 있어야 해. […] 자네 자신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살피게.”
그것이 글을 쓰는 일이든, 밥을 먹든, 사람을 대하는 일이든 간에 우리의 삶의 태도는 한결같다는 것.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그 결과를 결정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이 책을 계기로 인생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고 또 고민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두어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글을 쓰는 데에 기계적인 부분이 많다고 낙담하지 말게. 원래 그런 거야. 누구도 벗어날 수 없어. <무기여 잘 있거라>의 도입부를 적어도 쉰 번은 다시 썼다네. 철저히 손을 보아야 해. 무
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이 작품의 한계점이라고 할지, 외려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실화와 허구 사이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직접 경험한 일을 토대로 쓴 내용이지만 작정하고 인터뷰를 했다기보다는 그저 기억과 짧은 문서, 사진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때로는 소설적인 묘사도 등장하고요. 이 책의 요점이 정확한 사실 고증이 아니라 하더라도 헤밍웨이 정도의 인물을 묘사하고 그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 정확한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독자로서는 그대로 충고를 받아들이기가 힘든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놀라웠던 것은 헤밍웨이에 대한 묘사가 제가 상상했던 것과 꽤 달랐다는 겁니다. 사실 그에 대한 묘사는 다양한 영화, 소설, 인터뷰 등의 대중매체에서 종종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무의식적으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의 마초남 헤밍웨이를 상상하며 책을 펼쳤었는데, 막상 새뮤얼슨과의 일화를 보니 생각보다 다정하고 인간적인 면모에 편안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더군요.
이 책은 수많은 작가가 고민해온 그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토록 오랜 시간을 걸쳐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헤밍웨이의 작품이 어떤 마음에서 우러나왔고, 그것을 쓴 ‘그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단 한 번이라도 든다면 이 책을 펼쳐보기를 권합니다. 서점에 있는 수많은 글쓰기 강의와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 장담합니다.
신은별 / BHA국문에디터
shineunbyul00912@branksome.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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