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책다락방: 네 번째 편지
- 신은별
- Mar 3, 2016
- 3 min read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나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한 편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가족과 함께 자라며 어릴 적부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게 아마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자 문득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관심사 위주로만 독서를 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전문서적을 뒤져보아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필리버스터’는 대체 뭐고, ‘포퓰리즘’은 또 뭔지. 정치와 경제는 왠지 멀게만 느껴지고, 자연스레 신문에서는 나도 모르게 사건사고와 예술/전시 면을 먼저 찾게된다.
멀지 않은 과거에서 우리는 지식을 쌓을 수록 더 나은 기회를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말 그대로 “정보가 폐품처럼 쌓여가는” 이 시대에서 단순무식의 암기식의 공부는 무용지물이다. 어릴 적부터 지겹게 들었던, ‘정보화 사회’라는 말이 그 무엇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들어맞게 되어버린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모든 서점의 베스트셀러와 TV 고정 프로그램을 섭렵했었던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각광받지 못하고, 모든 영역의 모든 지식을 세부적인 사건까지 죄다 꾀고 있는 백과사전같은 사람은 더 이상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우리보다 정확한 암기와 계산을 해주는데, 굳이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달달 외우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그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지은이인 채사장은 이제 ‘넓고 얕게’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자발적으로 탐구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역사나 경제, 정치에 대해 깊이있는 학문적 연구를 할 겨를도 없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흐름’을 꿰뚫어야 한다. 이토록 번잡한 세상, 터질 것 같은 머리 괴롭히지 말고 우선은 딱 ‘아는 척’할 수 있을 만큼만 해보자는 것.



<지대넓얕>의 목차.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와 각각의 소주제들.
사실 이와 같이 지식의 ‘얕음’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내세우는 콘텐츠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 ‘TED Talks (테드 톡스)’, 그리고 한국에서는 비슷하게 ‘세상을 바꾸는 시간 (세바시)’가 있는데, 모두 일반인부터 유명인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한 경험을 짧은 15분~30분 이내로 간략하게 정리하여 대중과 나누고, 곧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의 원천이 된다. 실제로 그 ‘얕은 지식’만으로 대중을 성숙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던 온라인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이하 ‘지대넓얕’)>은 한 달간 횟수로만80만 번의 스트리밍을 기록하였고, 그것을 보기 좋게 엮어 출판해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한 가지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이 전문가를 위한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주제는 찾아보기 힘들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대다수라 다시 한 번 가볍게 점검하는 기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교과서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처음보는 주제는 또 처음보는 대로 낯설지 않게 살살 달래가며 넘어가니 또 신기하다.
<지대넓얕>의 목차를 살펴보면 크게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의 다섯 개 단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시리즈이기 때문에 1권이고, 두 번째 책인 ‘현실 너머 편’은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로 나누어져 있어 총합 10개의 주제로 진행된다. 또 한 가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앞서 말했던 ‘흐름’이다. 여타 인문학 교양서와는 다르게 구간별로 골라서 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 책을 읽듯 흐름을 따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읽다 보면 정말 소설책을 읽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어 역사의 경우, ‘직선적 시간관’, ‘원형적 시간관’같이 흥미롭고 철학적인 주제부터 원시 공산사회, 고대 사회,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 세계 대전까지 모두 포함하는데 그 방대한 내용을 시간적 흐름을 따라 정리하니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말투 역시 구어체로 일상적인 비유나 예시를 신경 써서 집어넣은 흔적이 보인다.
어쨌든, 현대 사회에서 정보를 다듬고 적정 수준의 것으로 만들어 전달하는 일이 최근 인문학의 트렌드가 된 것은 지식으로 인해 피로해진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교육’이 특권으로 주어지고 그것에 우월감을 느껴야만 하는 세상이지만, 이제는 그것도 사라져야 할 때가 아닌가. 어쩌면 괜한 확대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것이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배움의 주체가 되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노력으로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을 정보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 함께 ‘얕은 지식’을 파헤쳐 보자.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만의 의견과 견해를 차근차근 정리해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분명 대화는 특정 대상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제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어른들의 놀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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