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말랑말랑 책다락방: 세 번째 편지

  • 신은별
  • Feb 17, 2016
  • 4 min read

사진 출처: 직접 촬영

엄마한테 읽어주는 시와 에세이 – 엄마, 우리 힘들 때 시 읽어요

송정연, 송정림 지음 / 류인선 그림 / 나무생각

시와 어머니. 아마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쉽게 눈물을 불러내는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런 두 소재를 가지고 책을 펴낸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참 영악한 꾀를 썼다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요즘 발끝만 내디디면 걸려 넘어질 정도로 서점 바닥에 널려있다는 ‘힐링’이라는 키워드의 에세이 아닌가. 시집은 좋아하지만, 특정 시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늘어놓는 식의 글은 좀 막무가내다 싶었다. 게다가 서점의 트렌드에 따라가고 있다는 의도가 너무 훤히 보여서… ‘최근 나온 책’ 가판대에 누워 소비자의 간택을 바라는 수많은 책들의 경쟁 틈 속에서 비참하게 묻힐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같이 나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이 책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어느 날 기숙사에 도착한 한 택배 상자에서였다. 무려 엄마가 보내주신 택배였다. 엄마가 책을 보내주시는 건 종종 있는 일이라 놀랄 것도 없었지만, 책의 제목을 보고는 조금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딸에게 쓰는 글도 아니고 딸이 엄마에게 쓰는 글을 엄마가 딸에게 권하다니. 물론 당사자께서는 그저 시를 좋아하는 내 마음에 들까 해서 보내셨겠지만, 뭔가 아이러니한 상황 아닌가. 그래도 시집에 한해서는 편식을 하지 않는 편이고 엄마가 보내주셨으니 읽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송정연 씨와 송정림 씨는 3남 4녀 중 각각 세 번째와 다섯 번째 딸이다. 저렇게나 많은 아들딸 중 둘이나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니 신기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위아래로 있는 아들들도 문학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것 같더라. 게다가 필연적인 건지 고향도 서귀포, 현재 어머니가 머물고 계시는 요양원 역시 서귀포라 한다. 이러나저러나 독특한 성격의 가족인 것 같았다.

제목에서 쉽게 추측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자매가 평소 시를 즐겨 읽으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쓴 편지에 가까운 글이다. 읽는 방식은 마음대로 해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들이 옮긴 시를 한 번 읽고, 그 옆에 곁들여놓은 조각 같은 편지를 읽고, 다시 한 번 시를 곱씹으며 그 가족을 찬찬히 떠올려본다. 조막만 한 시골집이 6남매로 인해 왁자지껄하게 물들고, 살금살금 첫째 오빠의 서재에 들어 시집을 훔쳐보는 여자아이와, 소박한 형편이지만 행복한 가족. 밭일에서 돌아오신 온화한 표정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과거의 젊고 단아하고 현명하신 어머니를 떠올리는 두 자매의 얼굴에는 그 아름다움 대한 경외와 사랑이 넘친다.

그러나 정작 현실 속 그들의 어머니는 홀로 병환에 누워계시는 어머니, 차마 세월이 빗겨가지 못한 어머니, 손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어머니, 가끔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어머니이시다. 그가 쓸쓸하시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 써내려간 글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때 그 모습을 향한 그리움과 미래를 바라봄에 있어 불안함을 두 자매는 애써 감추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과거와 현재 속의 두 어머니 모두 변함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땠을까. 책장을 넘기며 문득 떠올려 보게 되었다. 사실 나와 오빠 역시 책의 저자 두 사람 못지않게 스스로 ‘엄마 바보’임을 주장하는 남매였다. 물론 질풍노도의 10대 때야 밖에서는 쿨한 척, 엄마를 위하는 일이 못내 부끄러웠지만, 집에서는 애교란 애교는 다 피우는 두 아들딸을 엄마는 그저 웃으며 토닥여주셨었더랬다. 그래서인지 스무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엄마에게 나는 새침한 막내 아기 같다고.

과거, 십 대의 내가 바라보던 어머니는 바보 같은 분이셨다. 말귀도 못 알아듣고, 이해도 공감도 좀처럼 할 수 없는 이상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에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꿈도 없는 그야말로 바보 같았다. 지금 스무살의 내가 바라보는 어머니는 즐겁게 헌신하는 것을 가르쳐주신 분. 또 시간이 흘러 서른 살의 나, 마흔의 내가 바라보는 어머니는 조금 다르겠지만, 엄마에게 내가 아직 다섯 살짜리 아이인 것처럼 엄마도 분명 여전히 당차고, 따뜻하고, 아이같이 사랑스러운 엄마일 것이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것을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물어도 그저 우리 자식들만 좋다 하시니…… 정말 모르겠어요. 이제라도 말해주세요. 엄마가 좋아하시는 게 뭔지, 갖고 싶은 게 뭔지……. 제가 가진 거 다 팔아서라도 사드리고 싶어요. 엄마도 좋아하시는 게 있을 거라는 사실조차 너무 늦게 알아서…… 정말 죄송해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중에서

그러나 한 편으로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도 많다. 조금 철이 일찍 든 편이었던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아빠랑 오빠는 단순해서 생각이 훤히 보이는데, 엄마는 좀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라고. 한없이 가까울 것만 같았던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가 사실은 가장 서로를 알 수 없는 위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중학생 무렵. 내가 본격적으로 나의 미래에 대해 꿈꾸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 문득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예요?” 그에 엄마는 나를 보며 싱긋 웃으시더니, 이렇게 답하셨다. “글쎄….”

그때의 나는 조금 화가 나 있었다. 빛나는 미래에 대한 환상과 열정을 잔뜩 품은 내게 엄마의 미소는 마치 뭘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을 묻느냐는 듯 했다. 내가 말했다. “아, 정말! 엄마는 하고 싶은 일도, 욕심도 없어요? 나도 오빠도 이제 다 커가는 데 나중에는 뭐하려고.” 엄마는 또 한 번 웃기만 하셨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게 내 꿈이지.”

내가 그때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결국 나는 그냥 그러려니 수긍을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게 우리 가족을 향한 엄마의 헌신은 진정 그 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온종일 집안일에만 매달리고, 별로 더럽지도 않은 화장실 세면대와 거울을 꼭 세 번씩 닦아내고, 다 깎은 후 남은 배의 깡치 과일을 먹은 후 남은 가운데 부분 - 전라도 방언 를 가장 맛있는 부위인 것처럼 먹는 모습이 그랬다.

그러고 보면, 그때 엄마가 말하지 못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가장 빛나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만들어가기 전 꿈많은 소녀였던 적이 있었을까?

여전히 답은 알 수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두 자매의 어머니가 가슴에 품은 시들을 보며 어렴풋이 그 답을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꿈, 엄마의 웃음, 엄마의 눈물, 엄마의 희생…. 좀처럼 알 수 없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당신의 인생을 몰래 훔쳐본 것 같이 두근거렸다.

아이의 인생에 부모님은 어쩌면 지나가는 행인 1, 2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어요. 메인 캐스팅은 아닐 거에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엄마는 예외에요. 제 인생의 메인 캐스팅, 중요한 인물이랍니다.

-《감각》 중에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학습한다. 습관적으로 그 사실을 되새기며 ‘거부할 수 없는’ 그 자연의 이치에 몸을 맡기고 순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헌신과 사랑을 당연시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존재를 길을 지나가는 엑스트라처럼 당연히 여기다가, 언젠가 먼 훗날 텅 빈 길거리에 홀로 남겨진 나 자신을 견딜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 두 자매가 넌지시 건네는 사랑의 속삭임은 부모님과 자식 간의 사랑이 쌍방향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시는 만큼 내가 엄마를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만큼 꼭 안아드릴 수는 있지 않겠냐고. 그 사랑을 숨김없이 보여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효도가 아니겠냐고.

책을 덮으며 다짐하게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조금 유치해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 부모님께, 가족에게 사랑한다 아낌없이 말하기. 쉬는 날이면 엄마가 좋아하시는 시 몇 가지 추려서 자기 전에 읽어드리기. 해서 바라건대, 훗날 내가 딸을 낳고 스스로 어머니가 되었을 때, 그때의 나는 부끄럼 없이 엄마를 사랑한 딸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Recent Posts

See All
<Tuck Everlasting>

오늘 소개할 영화는 2002년 개봉한 <Tuck Everlasting>이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처음 접한 때는 2014년 9학년이 되기 전 여름방학 때이다. 여름방학 권장도서 리스트에 있었던 책 중에 <Tuck Everlasting>이...

 
 
 

Коментарі


당신 속의 PPJ
  • Facebook Basic Black
  • Instagram Black Round
  • Google+ Basic Black

플랫폼 포스트는

당신 가까이에 있습니다.

 

PPJ를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우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제주영어교육도시의 소식을 받아보세요!

Copyright©2015 by Platform Post Jeju

All page content is property of Platform Post Jeju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