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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진관

  • 신은별
  • Feb 1, 2016
  • 3 min read

여는 말

반갑습니다! 국문 에디터 신은별입니다. 이번 호에서부터는 격주로 단편 소설을 연재해보려 합니다. 제목은 ‘서울사진관’입니다. 배경이나 줄거리를 좀 더 설명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그냥 조용히 막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따끔한 지적, 격려의 말씀 모두 감사히 받겠습니다.

시간을 멈춰주는 사진관이 있다.

그 사진관은 서울 시내 구석에 판잣집 몇 채와 가게들만 덩그러니 남은 작은 동네 중에서도 아주 구석진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볼품없이 낡은데다 크기는 구멍가게와 별 다를 것 없는 이 사진관의 이름은 ‘서울사진관’이라 했는데, 그 조차도 금세 잊혀질 만큼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문 앞에 붙은 꽤나 당찬 선전 문구를 제외한다면 얼핏 보아도 주변 동네 사진관들과 구별되는 점 하나 없어보이는 평범한 사진관일 뿐이다.

검은색 블라인드가 가린 쇼윈도, 그 위에 테이프로 고정된A4용지는 가장자리가 닳아 말려 들어가 있다. 그리고 하얀 바탕에는 커다랗고 정갈한 글씨로 한 줄의 문구가 쓰여 있다.

‘당신의 시간을 멈춰드립니다.’

우습게도 이런 공상과학소설과 같은 이야기는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처음에는 별 같잖은 우스갯소리도 다 있다하며 코웃음만 치던 젊은 이들도, 생계에 바쁜 어른들도 왠지 모르게 모험심을 자극하는 그 모습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렇게 무관심과 차가운 비웃음 속에서 문을 연 사진관은 이내 동네 사람들의 호기심과 남 모를 배려 아래 마을 내 전설과 같은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 번은 서울사진관이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 원인이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 이미 사진관 주변의 오래된 판잣집들은 싹 다 포크레인이다 데몰리션이다 하는 것들이 몰려와 죄다 밀어버린 지 오래였던 것이다. 내가 재개발 택지에 들어선 때에도, 지금도 마을의 밤은 크레인의 빨간 불과 아파트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 불 꺼질 날이 없었다. 당시 서울사진관도 예외없이 정부에서 날아온 빨간 딱지를 받았고, 한 달안에 강제 이주를 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사진관이 이주하기 까지 거의 일주일을 앞두었을 때 쯤에 소문은 이미 동네 이곳저곳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또 다른 소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출처는 알 수 없었으나 마지막으로 소문을 전한 사람은 마을에서도 소식통으로 유명한 훈이 어머니였다.

그녀는 이렇게 전했다.

“거기, 뭐시기 조합원이라는 곳에서 개발 지역을 다시 선정한다더라고. 투표로 정한다나, 뭐라나.”

놀랍게도 결의권의 3분의 2가 찬성표로 기울면서 재개발 조합원 역시 재개발 지도를 수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다시 했다. 그들이 서울사진관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닌 지는 그 누구도 몰랐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조합원이란 사람들도 장장 20년 째 사람들의 신뢰를 받으며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모습에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그 후로도 사진관은 마을의 ‘기적’으로 남았다.

그에 비해 나는 이 마을로 이주한 지 1년조차 채 되지 않은 새내기 주민이었다. 이 읍이라는 곳이 생각보다 비좁아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가족 혹은 연인마냥 속속들이 잘 꿰뚫고 있을 정도였는데, 거기에 나란 존재가 덜컥 내려 앉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굳이 나를 배척하려 들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집 앞에서 마주칠 때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 외에는 딱히 커다란 관심을 두지도 않는 듯 했다. 때때로 건너편 집의 국민학생들이 담벼락에 서서 기웃거리는 것이 당시 이 마을에서 느낀 유일한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이던 나와 동네 사람들의 관계를 맺어준 존재가 바로 마을의 주인공과 같던 서울사진관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기미가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좀처럼 가까워질 것 같지 않은 관계였던 나와 사진관 사이의 연결고리는 어쩌면 조금 어처구니 없을 만큼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내가 이사를 온 지 한 달이나 지났을 무렵이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지 얼마되지 않은 아들을 위해 부모님은 김치 열 통을 들고 찾아오셨다. 스무살을 갓 넘긴 어린 아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야 있겠냐만은, 어쨌든 나는 그 즈음 전기밥솥에 든 밥조차 까맣게 태워버릴 정도의 새내기 자취생이었고 김치든 뭐든 당장 먹을 밥이 급한 상황이었다. 부모님 전화를 그토록 반갑게 받아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쁘게 문을 박차고 마중을 갔다.

버스 터미널은 집에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느긋하게 외투를 걸치고 나가니 열 두시 삼십 분, 부모님은 한 시에 도착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여유롭게 남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코 끝에 스치는 봄바람이 제법 따뜻해서 인지는 몰라도 나는 걷는 내내 다른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평소에는 쓸데없는 짓이라 여겼을 것들이었다. 아직 익숙치 않은 거리를 눈에 담고, 마치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어린 아이처럼 나는 쉼없이 눈을 돌렸다. 여기는 어디이고, 또 저기는 어디인지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눈 앞에 좁다란 골목이 보였다. 생전 본 적 없는 어두운 길목 사이로 가파른 계단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뿔싸, 나는 길을 잃고 만 것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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